[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목련이, 개나리가 피고 홍매화 꽃눈 방울처럼 달렸습니다 봄 하늘 바라보다 눈물이 맺힙니다 수척해진 얼굴, 내 탓만 같아 미안했습니다 애간장 아랑곳 없이 봄은 늦게, 느리게 오고 있습니다 당신을 알게 된 호수는 아름다워 닿을 수 없는 그곳엔 종일 달빛 마음 출렁이고 예상 못한 일들, 바람 불듯 일어나기도 하고 꽃 지듯 사라지기도 하였지요 푸른 호수와 푸른 하늘이 붙어버린 저녁 서로의 안부를 묻기엔 너무 멀리 흘렀나 봅니다 꽃 지듯, 나뭇잎 떨어지듯, 아무 일도 없었듯이 세월 지나 덤덤히 목련이 피고 목련이 떨어질 즈음 나도 없겠지요 살다 보면 눈물이 마르도록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이 되어 있을 터이니 안국역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차마 무겁습니다 별이 무수리 떨어져 안기는 밤 멀리서 바퀴 소리가 나를 지나쳐 웁니다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듯 서쪽하늘의 노을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쉼 없이 이어지는 분주함 속에서 저녁 한때 깊숙히 의자에 몸을 맡긴 채 고요히 내려앉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새 내 마음에도 서서히 노을이 지고 고요가 잠겨옵니다. 하늘 빛이 옅은 붉은빛으로 변해가다 어느 사이 하늘은 옅은 보라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오는 노을 빛은 천상의 색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신비한 빛입니다. 노을빛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귀에 가득했던 분주한 소리들이 하나 둘 지워지고 이제 들리는 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보금자리 찿아 날갯짓을 펴는 새들의 노래가 간간이 들려오고 바람에 젖는 풀들의 나즈막한 속삭임이 들립니다. 나는 지금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고요 속에 있습니다. 먼곳에서 졸리운 듯 들리는 자동차 달리는 소리며, 내 안에 흙탕물이 서서히 침잠하는 고요 속에서 사과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높아지기에 턱없이 작은 우리이기에 오히려 낮아지는 동작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 깊어지기 위해 넘어짐과 상처와 경솔함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실수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를 향한 용서가 우선되야합니다. 그런 후에야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바로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노을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언제 그 이름이 내 마음에 새겨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내 안에 들어와 시간과 환경과 풍경이 바뀔 때마다 그 이름은 풍선처럼 내속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이름 하나 품고 노을 속으로 깊어 가자면 나뭇가지 사이 반짝 보이는 얼굴과 바람에 실려온 반가운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렵니다. 작은 가슴에 다 담을 수 없는 미어지는 아픔을 행복이라고 아직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름 이름 하나 달빛 마음 바퀴 소리